다양성이 꼭 필요한가요?
필자가 실리콘밸리에서 경험 했던 엔지니어링 팀 중 다양성과는 정말 거리가 먼 팀이 있었다.
다양성이 꼭 필요한가요?
제호 : 2019년 10월호, 등록 : 2019-09-26 15:29:55




필자가 실리콘밸리에서 경험 했던 엔지니어링 팀 중 다양성과는 정말 거리가 먼 팀이 있었다. 중국인 매니저가 이끄는 팀이었는데 그 사람은 엔지니어들에게 승진을 약속해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아주 명확하게 커리어 플랜을 세워 주었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 시키면 다음 레벨로 승진시켜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우린 최고만 필요해, 다양성은 필요 없어!
그러한 방식은 중국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아주 큰 호응을 얻었다. 어두운 숲속에 혼자 버려져 내 길을 알아서 찾아가야 하는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영어도 안 되고 미국과 실리콘밸리의 문화도 잘 이해하기 힘든 20대 중반을 넘어서야 미국 땅을 처음 밟은 필자와 같은 이민자들에게는 등불을 들고 우리를 이끌어주는 지도자처럼 느껴졌다. 중국말까지 통하는 중국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터였다. 매니저와 일 이야기를 할 때 중국어로 해도 되고, 매니저가 끌어주겠다고 약속도 하고, 명확하게 무엇을 하면 승진을 할 수 있을지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 매니저는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승진을 당근으로 수많은 엔지니어들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약속들은 스스로 자율성을 가지고 해쳐나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 자유와 다양성에서 자신의 능력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것이었다. 매니저가 승진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매니저는 내 승진과 성장을 돕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키는 대로 하면 승진시켜주겠다고 하는 약속은 너무나도 어색하게 들렸다. 누군가의 리더십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아시아계 사람들에게는 나를 이끌어 줄 멋진 리더, 우리를 위해 다른 매니저들과 싸워줄 보호자처럼 느껴졌지만, 내가 스스로 성장하는데 익숙한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는 '내 말대로 하면 성공할 수 있어'라는 말은 펀드매니저가 "제 말대로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어요"라고 하는 말을 듣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보장해 줄 수 없는 나의 성장을 다른 사람이 보장해 준다는 거짓말을 듣는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그 매니저의 팀에는 말 잘 듣고 성실하게 시키는 일을 잘하는 중국인들과 아시아인들만 몰려들었고 비아시아인들은 조금만 팀에 있다가 나가거나 아예 들어오는 것 자체를 꺼렸다. 그 팀이 가장 컸을 때 그 팀의 엔지니어들은 100%가 한국인인 나를 포함한 아시아인이었고, 90% 이상이 중국 본토 출신의 이민자였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백인 위주의 사회의 다양성의 배려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중국인들이 팀의 주류가 된 것이다.
어느 날 우리 팀의 좋은 점, 안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팀 회의에서 필자는 다양성의 문제를 지적했다.
"우리 팀에 너무 다양성이 부족한 것 같아요. 우리 팀은 100% 아시아인 팀입니다. 우리 회사에서 지향하는 다양성의 방향에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갑자기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모두에게 불편한 진실을 건드린 것 같았다. 매니저도 탐탁치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다 한 엔지니어가 용기 있게 말했다.
"다양성이라는 말은 개소리야(Diversity is bullshit). 우리는 우리 팀에 맞는 최고의 인재만 뽑을 뿐이야. 우리의 높은 기준을 다양성을 위해 바꿀 생각은 없어."
그 말은 용기 있었고 회사에서 하고 있는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다. 그 말이 틀린 것 같았고 뭐라고 멋지게 대꾸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이러했다.
'소수자들을 배려하고 다양한 인종의 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지. 왜 중요하지? 뭐 그렇게 하면 창의력이 좋아진다고 했고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다고 하잖아. 그리고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고. 다양성은 인권의 문제니까 중요하겠지. 다만 회사는 복지단체가 아니니까 돈 버는데 기여를 많이 하는 사람이 어차피 제일 중요하겠고. 백인들과 아시아인 남자들이 엔지니어로서 제일 잘 하니까 많은 거 아닐까?'
이러한 생각을 하고 보니 우리 팀이 100% 아시아인 팀인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했고 문제도 없어보였다. 마음 맞는 사람들이 우리 방식으로 일을 해서 좋은 성과를 내겠다는 데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팀원들의 면면도 대부분 중국인이기는 했지만 엄청난 인재들이었다. 중국 내 상위 0.1%에 해당하는 천재들이었다. 중국 최고 수준의 대학을 나와 미국 최고 수준의 대학을 영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 엄청난 경쟁을 뚫고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가 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밤낮없이 승진을 향해 엄청나게 열심히 일했다. 이 정도면 이상적인 팀이 아닌가?

구성원 모두가 '나'로 일하고 있나
실리콘밸리 회사는 늘 다양성을 외친다. 늘 흑인, 여성, 히스패닉이 적고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한다. 게이와 성 소수자들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면서 교육도 하고 강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로 호소하기도 한다.
실제로 2016년 실리콘밸리 177개 기업을 조사한 다양성 보고서를 보면 <그림 1>과 같이 백인 남성과 아시아인 남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흑인은 1%, 남미계는 2% 수준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미미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백인 남성의 비율이 증가한다.1)
미국에서도 이 문제는 큰 딜레마이다. 백인 위주의 사회였던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을 가장 우월하게 생각하는 편견이 사회 전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즉 기독교를 믿는 백인 남성이 미국 사회의 주류라는 생각은 이미 수백 년간 자리잡아온 생각이다. 그것이 무너지고 있다는, 즉 아시아인과 히스패닉과 흑인 수가 증가해 백인이 주도권을 잃고 있다는 생각은 백인들에게는 공포에 가까운 생각이고 그러한 생각들이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까지 했다.2)
그렇지만 백인은 아직도 모든 미국인들에게 흑인이나 히스패닉이나 아시아인들보다 훨씬 더 호감 가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바로 이 지점이 문제가 된다. 다른 인종과 성별의 사람들이 백인 남성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백인 남성이 아닌 사람들에게 정말 불편한 일이다. 자신의 특성과 강점을 살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동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인 팀에서 필자는 소수자가 되어버렸다. 필자는 중국어를 못하고 그들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이어서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중국인으로 이루어진 리더십 그룹에서 많은 결정을 내렸고 필자는 그 결정을 통보받을 뿐이었다. 필자가 그 곳에서 성공하려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나의 종합적으로 생각하는 인문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로서의 장점, 나의 한국인으로서의 평생을 쌓아온 그들과 다른 사고방식은 전혀 의미가 없어진다.
다양성은 다수민족이 소수민족을 배려하고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은 집단의 구성원 모두가 '나'로서 활동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가 있는 부모들이 아이 없는 사람들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고, 한국인이 미국인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고, 미국인이 한국인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고, 동성애자가 동성애자가 아닌 척 하지 않아도 되고, 특정 부분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부족하지 않은 척 하지 않아도 되고, 잘 하는 사람이 못하는 척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미국에 10년 정도 살아 본 결과 백인이 우월하고 흑인이나 아시아인이 열등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백인도 멋진 사람도 있고 안 좋은 사람도 있다. 흑인도, 아시아인도, 히스패닉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똑똑한 사람들, 운동 잘하는 사람들, 잘 생긴 사람들, 글 잘 쓰는 사람들, 마약 하는 사람들, 술 많이 먹는 사람들, 술 못 먹는 사람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범죄를 막는 사람들 등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우린 최고만 필요해, 그래서 다양성이 필요해!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프로축구팀을 한번 생각해보자. 유럽의 축구팀들은 흑인, 아시아인, 백인 최고의 선수들이 어우러져 세계 최고의 팀이 되는 것이 이미 당연해졌다. 만약 그 팀들이 백인들 위주로 출전 기회를 주고, 아시아인과 흑인도 백인처럼 행동하기를 바란다면 주눅이 든 아시아인과 흑인들은 제대로 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팀이 되려면 세계 최고의 사람들을 모아야한다. 그렇게 하려면 그들이 가진 종교와 가치관과 피부색과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필자가 속한 팀은 그동안 본 어떤 팀보다도 최고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남녀 성비도 비슷하고 미국, 유럽, 남미, 한국, 중국, 인도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있다.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 동성애자도 몇 있다. 우리 팀은 정말 각자의 역할을 잘할 최고의 사람들을 뽑아 왔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자신의 장점을 마음껏 펼친다. 다른 누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쏟아낸다.
세계 최고만 뽑았는데 모든 사람이 한 인종과 성별이라면 그것은 무언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뜻이다. 지금 업무가 특정 성별에 유리하거나 특정 인종이나 특정 언어를 쓰는 사람에게 유리하다는 뜻이다. 그런 일들은 분명히 있다. 한국어 번역이 필요한 곳에는 한국인들이 많을 것이고, 근력을 많이 써야 하는 일에는 남성이 많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류의 일은 과거에는 많은 근력을 필요로 했었다. 농사와 건축 등에는 근력이 많이 필요하고 남성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그래서 남성이 많은 역할을 해 왔고 남성이 일을 한다는 고정관념이 형성됐다.
그렇지만 지금의 일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 자체만 놓고 보면 남성이 유리하거나 특정 인종이,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이, 특정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유리한 일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일 자체의 특성이 성별과 인종에 대해 독립적이라면 그러한 직종에서 성별과 인종에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사회의 편견과 불평등한 사회 구조인 경우가 많다. 여성이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사회 구조나 남성이 일하는 것은 멋있어 보이고 여성이 일하는 것은 드세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회상, 백인은 일을 더 잘 할 것이라는 편견 같은 것이다.
그래서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편견을 깨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단순히 소수 민족의 인권의 문제가 아니다. 최고의 사람들이 모인 회사에서는 최고의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이라는 점이, 소수민족이라는 것이, 성 소수자라는 것이 내 역량을 발휘하는데 불편한 일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애플의 CEO 팀 쿡은 남녀노소와 민족을 불문하고 최고의 인재 중 하나이다. 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 했으면 애플에게는 큰 손실이 될 것이다. 구글의 CEO 선다 피차이가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없었다면 구글에게도 엄청난 손실일 것이다.
오늘 우리 팀에 모인 탁월한 인재들을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백인 남성만 뽑는다는 편견 때문에 이 각자 빛나는 재능을 가진 여성, 중국인, 한국인, 동성애자 등 최고의 인재들을 다 놓친다면 그 얼마나 큰 희생인가? 우리는 최고의 인재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양성이 중요하다. 어떠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실력만 있으면 그들의 실력을 그들의 방식으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팀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성공의 원동력 중 하나이다.

                                                                                                                 

  1) https://www.revealnews.org/article/heres-the-clearest-picture-of-silicon-valleys-diversity-yet/
  2) https://www.pewresearch.org/fact-tank/2016/03/31/10
유호현 에어비앤비 페이먼츠팀 엔지니어
 
 
  • 리스트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