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국내 한 지주사의 조직문화 담당자로부터 이런 고민을 들은 적이 있다. 그룹 차원에서 야심차게 새로운 핵심가치를 정립했는데 그룹 내 몇몇 회사가 이미 자체적인 핵심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해당 회사가 그룹 내 영향력이 커서 그룹의 핵심가치를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룹 핵심가치와 회사의 핵심가치가 따로 유지하는 것도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방안으로 표기방식이라도 달리하여 '공유가치'와 '핵심가치'라는 용어를 사용하려고 하는데 어떤 것을 그룹의 가치에 써야 하고 또 어떤 것을 회사의 가치에 써야 하는지가 고민 중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그룹은 공유가치, 회사들은 핵심가치라고 표기하라고 전혀 주저 없이 조언을 해주었다. 그 그룹은 몇 년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필자는 조직문화 컨설턴트로서 이론적 확신과 논리적 타당성을 바탕으로 올바른 조언을 한 것일까?

그 대답은 '절대 아니다'이다. 단지 필자는 그 담당자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방안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일부 회사가 이미 핵심가치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니 새롭게 정립된 그룹의 가치에 공유가치라는 이름을 붙여주면 '추가적인 조정 없이도 수월하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조언한 것이었다.

최소한 그 담당자에게 있어서만큼은 그룹 핵심가치는 조직 구성원이 동의하지도 않고, 받아들여야 할 이유도 없는 이른바 전문가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의미 없는 문구들에 불과하다. 그룹 웹 사이트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거나 흔히 말하는 비전 하우스를 화려하게 꾸며주는 그럴듯한 논리 정도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새롭게 정립된 그룹의 가치를 핵심가치로 표기할 것인지 아니면 공유가치로 표기할 것인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우리 조직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조직문화담당자이기에 앞서 조직의 직원으로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된다면, 불필요하고 도움 되지 않는 고민을 하느라 시간낭비 하기보다는, 조직문화에 도움 되는 다른 노력을 찾아보는 것이 담당자에게 있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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